굿프렌즈 게시판

우리는 모두 부족함 속에서 성장한다(굿프렌즈심리상담센터)

작성자
친구
작성일
2020-05-02 12:36
조회
1140
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 아파하셨다. 그 어머니의 경우 부부 사이가 오래 전부터 좋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대놓고 아이 앞에서 다투지는 않는다. 다만 집안엔 늘 냉냉한 분위기가 감돌고 부부 사이엔 별다른 대화도 없다. 아이도 당연히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화책을 읽어 주는데 아이가 한참이나 주인공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부러워하였다.

엄마는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부부상담을 받아야 할까? 물론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쳤고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볼 동력이 없다. 그래도 아이 생각을 하면 내가 한번 더 희생을 해서라도,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자신은 결코 좋은 엄마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좋은 부부 관계, 화목한 가정은 아이에게 당연히 좋다. 아이에게 행복감을 주고, 좋은 모델이 된다. 따뜻하고 즐거운 가정의 분위기는 아이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만들어준다. 그 어머니도 이야기하셨는데,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속상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미안해 하실 일은 아니라 생각해요.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고, 더더군다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엄마가 나쁜 엄마인 것은 아닙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노력을 해서 부부 관계가 회복된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안 된다고 해서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것은 아니에요."

이런 말은 그럴듯한 위로처럼 들릴 수 있다.

"부모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좋은 부부 사이도 보여 주지 못하는데, 그래서 아이가 불안을 느끼고 뭔가 자기는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항변이 마음 아팠지만 나는 내 뜻을 더 분명하게 말했다.

부모가 부족하면 아이에게 미안해야 하는 건가요? 부족하면 문제인 건가요? 부족하면 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아이를 키우면 안 되는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언제든 부족해질 수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돈이 없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요. 어떤 부모는 몸이 불편하고, 어떤 부모는 아이를 이끌어줄 지식이 부족해요. 어떤 부모는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고, 어떤 부모는 사이가 안 좋고, 또 어떤 부모는 이혼을 하기도 하죠. 그 부모들은 모두 부족하니까 아이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요?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하며 자라야 하는 것인가요?

"선생님, 그래도 아이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마음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마음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요. 더 나은 부모를 만났으면 아이가 더 잘 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기에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아이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기에 이런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고, 아니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조건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완벽한 조건이란 이상적인 것일뿐 대부분의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남들은 다 괜찮게 사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아픔과 결핍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거의 모든 가정은 그마다의 어려움과 불행을 지니고 있다. 또는 어느 순간 불행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결핍과 슬픔, 어느 정도의 불행은 그저 우리 삶의 보편적 조건이다. 특별하지 않다. 아이들 역시 여기 적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만들고, 성격과 스타일을 만들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어느 정도 기울고 비틀어지기 마련이지만 다 괜찮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어머니, 아이에게 미안해하면 아이는 착각할 수 있어요. 자신은 늘 행복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착각하고,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세상은 자신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어머니가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고 같이 마음 아파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미안하실 일은 아니에요. 어머니가 나름 노력을 해 보았고, 그래도 안 되는 일도 있잖아요. 그러면 어머니로서 할 일은 했고, 이제 아이는 그 조건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조건에서도 얼마든지 잘 성장할 수 있어요. 그 조건이 아이에게 무엇을 만들어줄지 그건 아무도 몰라요. 아주 행복한 조건에서 성장한 아이가 매력적이고 능력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어요.“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은 없다. 결핍이 없어야 정상인 것도 아니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작은 결핍이라도 있다면, 그건 부모의 잘못이라 생각한다면 아이는 어릴 때부터 빚쟁이 심리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자기는 억울한 사람이다. 세상에 받아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내게 빚지고 있다. 이렇게 해선 나르시시스트나 불평 불만이 많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과도하게 미안해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밀리고 만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을 아이에게 주고, 필요한 경계나 제한도 두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에 과도하게 허용하고, 아이를 기쁘게 하려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준다. 정반대로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아이에게 모질게 하거나 아이 감정을 들여다 보지 않으려고 아이를 멀리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부모는 부족함 속에 아이를 키운다. 심지어 부족해 보이지 않는 부모에게도 부족함이 있다. 결핍의 부족, 무능의 부족인데 이 역시 아이들에겐 적잖은 짐이 된다. 나의 부족함이 아이에게 반드시 짐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모는 결국 아이의 부족함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나의 부족함을 과도하게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부모는 아이의 부족함도 부끄러워하고 어떻게든 없애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대단하지 않은 조건에서 인류는 태어났고 자라고 어른이 되어 왔다. 그리고 대단하지 않지만, 각자 한 사람으로서 대단한 삶을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니까. 누구와 바꾸거나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 나를 좀 더 받아들이자. 그리고 아이에게 말해줘야 한다.

“이런 부모지만 너를 사랑해. 그건 엄마의 약점이야. 하지만 엄마는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너는 잘 자랄 거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뭔가가 부족해서 못 자라는 것은 아니야.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잘 자라기 어렵지. 엄마는 네가 너를 좋아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려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네게 모든 것을 주지는 못하지만 엄마가 못 주는 것을 또 네가 채워서 엄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 엄마는 그생각만 해도 참 기뻐.”


출처: 서천석의 행동한아이연구소